정창식 | 조합원

내 나이가 갓 스물이 되었을 무렵, Bible이라도 되는 양 늘 품고 다니던 책이 한권 있었다. ‘신동엽 전집’

민중 속에서 흙탕물을 마시고, 민중 속에서 서러움을 숨쉬고 민중 속에서 민중의 정열과 지성을 織造(직조)ㆍ구제할 수 있는 민족의 예언자, 백성의 詩人(시인)이 정치 부로커, 경제 弄奸者(농간자), 腐敗文化 排泄者(부패문화 배설자)들에 대신하여 조국 心性(심성)의 본질적 前列(전열)에 나서 차근차근한 발언을 해야 할 시기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앞에 익어 있었던 것이다. [신동엽, 1961년 조선일보]

동학혁명을 노래한 대 서사시 ‘금강’과 4.19 혁명을 시화한 ‘껍데기는 가라’ 등의 시. ‘詩人精神論(시인정신론)’ 같은 평론들이 그 시절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며 등단한 시인이, 10년 뒤 40의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한 지도 그새 40년이 지났다. 하지만 시인이 노래한 ‘석양 대통령’은 아직도 없다.





散文詩(산문시)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大統領(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1968년>

Posted by 서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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