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1월 운용된 열차운행정보기록자료 정밀분석 TF팀




기관사 000

 


지적확인 환호응답


“사고가 없으면 사고란 단어도 없다”

  부기관사 시절이다. 전철기를 찢게 만든 수송원을 혼내자 그가 우리 기관사에게 했던 말이다. 지적확인 환호응답이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분이 의외로 많다. 오래전 내가 경험한 사고를 들려주고 싶다.

  입환 중 객차를 분리한 입환기가 인상하려고 할 때 한 수송원이 정상방향의 전철기를 붙들더니 손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정지’를 외쳤다. 단폐단 운전이니 기관사도 그 장면을 봤다. 기관차가 멈추자 그가 전철기를 돌렸다. 이 순간 분명 나는 사고를 막은 것이다. 


  차에서 내려 수송원에게 “지금 당신이 잡은 진로는 불량이에요”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기관차가 움직이며 그 전철기를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허탈하게도 전철기는 그렇게 쨌다. 그나마 탈선 안 해서 다행이다. 나중에 물어보니 기관사는 ‘정지’소리를 듣고 멈추니 바로 수송원이 전철기를 전환하기에 자신이 진로를 잘못 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철기가 전환되자 다행이라 생각하며 바로 지나갔다고 한다.

  당시의 사고는 수송과에서 알아서 다 해결했다. 막걸리로 해결되던 시절의 얘기다. 기관사와 나는 정확한 지적확인을 하고도 결과적으론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런 사고로 조사를 받으면 뻔한 질문이 나온다.


조사관: 지적확인 환호응답 제대로 하셨나요?

승무원: “평소엔 잘했는데 이때만 못해서...” (머리만 긁적긁적)


  하지만 앞선 사고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사관: 지적확인 환호응답 제대로 하셨습니까?
승무원: 그래 분명 제대로 했다. 왜 꼽냐?
조사관: 그런데 왜 사고가 났습니까?
승무원: ‘글쎄 그게 이상하네......’


  뭐 이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속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고가 나면 “지적확인 환호응답”을 못해서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났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지적확인을 제대로 했으면 사고가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대로 했어도 혹은 할 틈도 없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좀처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소위 “낚이는” 것이다. 그래서 ‘기관사만 죽이면 돼’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다. ‘우연’과 ‘지적확인’을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공사는 그것도 모자라 별 희한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 안전지도사 한시적 증원 운용 워크숍 단체 사진



야바위

  대한민국 전문직에 ‘야바위꾼’이 있다. 손에 고무줄 두 개 쥐고 긴 것 뽑으면 몇 배로 준다고 떠들지만 뭘 뽑아도 결과는 똑같다.
  요즘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뭘 뽑건 늘 지는 게임.
  그걸 잘 알기에 중요한 운전은 뒷전이고 기분 맞춰주느라 개고생해야 하는 그 분. 바로 안전지도사다.
  이 양반들이 재미 붙인 것이 ‘지적확인 환호응답’이다. 규정책을 보라. 내용이 정말 ‘천문학적’이다. 이걸 그냥 참조 하라는 게 아니라 모두 다 하란다. 하지만 다 할 수 없다는 걸 그들도 뻔히 잘 안다. 그러면서 생색낸다는 말이 ‘상황 봐서 요령껏’ 하면 되지 않느냐고? 
  야바위꾼도 말한다. “긴 것 잘 뽑으면 되잖아~”
  당당하게 말하자. 이건 아니다. 우리의 업무는 열차운전이다. 옆에선 쉽게 보여 문제다. 양궁을 보라. 얼마나 쉬워 보이나. 막상 해보면 활시위도 못 당긴다.
  
  지적확인은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보안장치와 함께 기관사의 의식을 환기시키는 행동일 뿐이다. 하지만 보안도에 있어선 빵점이다. 감속신호 보고 정확한 지적확인 한다고 ‘지적확인’이 벌떡 일어나 알아서 제동이라도 걸어주던가? 정작 보안에 있어 가장 중요한 ATS가 고장 나면 승인받고 캇트해서 운행을 한다. 제동력에 약간의 손실이 있을지언정 완해불량엔 ‘캇트’하고 운행을 한다. 물리적이며 객관적인 상황임에도 이렇게 융통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안전지도사에게는 융통성이 없다. 갖다 대면 뭐든 다 걸린다. 게다가 매우 자의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이 법이다. 기분에 따라 증거 없이도 처벌을 하는 초월적 사법기관이다.
  정차하려고 제동 쓰고 집중하는 기관사에게 ‘정차역’ 지적확인 안 했다며 시비를 걸어온다. 정지목표 지나면 이건 또 ‘정지목표 실당’, 목소리 작으면 자세불량 추가요∼ 


  더 고약한건 모든 걸 그 즉시 재단하는 자세다. 역 통과속도를 모르는 기관사가 있는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속도데이터를 검사해서 결국 잡히게 되어있다. 지난 몇 년간 아무 일 없었다면 그 기관사는 통과속도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몇 년의 실적조차 과감하게 무시하고 그 순간만을 집착하는 용감함이 두렵다. 기관차벽에 등 붙이고 혼자 손을 흔들다가 뽑으라며 주먹을 쑥 내밀면 우리는 뭘 고르건 반드시 진다. 돈 잃으면 그래도 낫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야바위에 걸리면 공연히 짜증만 나고 안전운행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사고예방을 해야 할 안전지도사들이 이렇게 야바위나 하며 ‘사고’ 치고 다니고 있다.


짭새와 외계생명체


  내 차에 아무 이유 없이 경찰이 탈 리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내 차에 타고선 ‘당신 사고 칠 것 같아서 미리 벌금딱지 하나주니 앞으로 잘해’라고 하면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럴 땐 주저 말고 뺨을 한 대 후려쳐라. 지적확인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또한 안전지도사가 전혀 쓸모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멀쩡한 사람들에게 ‘이상하다'며 속 긁고 다니는 안전지도사라는 외계생명체는 이제 그들의 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사고란 낱말이 없다고 사고가 없어질리 없다.
안전지도사가 없어진다고 안전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Posted by 서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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