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 서기지부 조사차장





prolog

5월 1일부터 식당 직영 사수를 외치며 안전운행투쟁에 돌입했으니 어언 한 달하고 10일이 되어간다. 투쟁의 진행은 안전운행투쟁이지만 그간 서울기관차가 진행해 온 투쟁의 8할은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데 쏟아 부은 듯 하다. 운영을 한다지만 이윤이 남지도 않고 인건비도 안 남고 마냥 적자만 보는 식당운영을 하고 있다. 도데체 이런 겁 없는 짓을 지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 달이 넘도록 밥을 하는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번 되짚어 보기로 했다. 


서기 주방장

  필자는 지부의 새내기 조사차장이다. 새로 일을 맡고 조사부다운 일을 한 거라곤 겨우 지부교번 만들어서 메일 보낸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지부조가 없어져서 내가 만든 지부교번은 한번 빛도 못 봤다. 얼마 전 우리 식당에 노조 위원장이 왔었다. 빨간 앞치마 두르고 미역국을 퍼주고 있었다. 귀현이 형은 열심히 계란을 부치고 있었는데, 위원장한테 나를 우리 주방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노조 수석 부위원장이랑 맥주 한 잔 할 때도 우리 지부장은 나를 주방장이라고 소개했다. 비록 세상에 빛 한번 보지 못한 지부교번이나 만든 게 한 일의 전부인 조사차장이라지만 한번 얼굴 보기 힘든 본조의 노조 위원장 수석 부위원장을 만났는데 나를 서기지부의 조사차장도 아니고 주방장이라고 소개하다니! 언제부터 서기지부에 주방장이라는 직책이 있었던가!
 


  그 시작은 작고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크고 비참하리라! 성경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서기 주방장 탄생은 정말 하찮은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식당이 문을 닫고 처음엔 컵라면을 사다 놓고 라면에 밥, 김치를 내주었다. 식당엔 남아 있는 쌀과 김치가 넉넉하니 있었다. 고민할거 없이 컵라면을 떨어지지 않게 사놓고, 밥과 김치를 해주면 그만이었다. 우리 지부장은 ‘보신각’ 스티커를 잘 보이는 곳에 내놓으며 철가방 아저씨한테 바빠질거라고 넉살을 피웠다. 그 땐 그랬다. 그러다가 철이 형이 세끼 컵라면만 주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돼지고기 사다가 주방에 있는 김치로 국이라도 끓여놓으면 사람들이 밥을 잘 먹을거라고 했다. 국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라면보단 낫겠다 싶었으리라.

  “한번 해봐라.”

  반찬은 김치하고 까놓은 양파가 가득 있었는데 그것 썰어다가 쌈장에 찍어 먹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양파가 싱싱하니 맛있었다. 맵지도 않고.

  “찌개 하나 끓이는 거야 어렵지 않지!”
 
  국만......... 진짜 국만 끓여 놓으면 되는 거였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대충 하는 거지 머! 맛있단다. 병수형이 큰 대접에 찌개를 퍼다가 밥을 말아서 연신 ‘좋다’를 연발했다.
  철이 형이 이젠 대놓고 꼬시기 시작했다.

  “계속 해라!”

  그 찌개를 철이형이 물 붓고 소금 넣어서 다음 식사 때 내놓았고 다음 배식 땐 희주형이 라면 스프 넣어서 새로 끓였는데 내가 한 찌개가 제일 맛있었단다. 이 사람이 펌프질 하고 있구나! 암튼 맛있다는데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맛이 없었다. 김치가 맛이 들지 않아 배추국에 돼지고기 많이 풀어서 밍밍하기만 했다. 묵은 김치가 필요했다.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묵은 김치만 있으면 훨씬 맛있을 텐데. 나의 주장은 묵은지를 사서 찌개를 끓이는 거였다. 철이 형 왈

  “야~ 무슨 요리 경연대회 나갈 일 있냐? 대충 해라!”
  “아~ 주방에 한번 있어봐! 사람들이 먹는데 맛없게 먹으면 얼마나 맘이 아픈데!”
 
  끝내 묵은지는 사지 못했다. 김치를 새로 사기 시작하면서 밖에다 며칠 묵혀서 찌개 끓일 김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슬슬 김치찌개 하나로는 부족해졌다. 반찬도 김치랑 양파로는 부족했다. 쇠고기를 사다가 푸짐하게 미역국도 끓이고 제첩국도 끓이고 북어국도 끓이고 바지락 사다가 된장국도 끓였다. 지부장은 연신 ‘푸짐하게 먹이자!’를 연발했다.
  또 철이형이다.
 
  “야~ 보니깐 국에다가 반찬하나 먹을 거 있으면 밥 잘먹겠더라.”

  어느 샌가 국 하나에 1식 5찬 6찬씩도 내놓게 되었고, 나는 주방장이 되어 있었다.


요리에도 정신이 있다.

  하는 요리마다 전부 맛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경험 많고 솜씨 좋은 전문 주방장이 아닌 야메 주방장이기에 어려운 순간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정말 맘에 안드는 맛! 내가 먹어 봐도 맛없는 물건을 먹으라고 사람들한테 내놓는 것처럼 치욕이 있을까!


  지부장과 강철 등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대충 해라! 맛없을 때 비책이 하나 있단다. 화학조미료를 넣으면 된단다. 그러면 어쨌든 맛있으니깐 맛 없는 것보단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온몸으로 항거했다. 우리가 식당 외주화를 반대하고 투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합원의 건강권을 위해 식당 직영유지를 주장하는 우리가 단지 야메라는 이유만으로 정신까지 화학조미료로 더럽힐 수는 없었다. 천연 양념만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겠다. 고집을 부렸고 다행히 그 고집은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정말 힘든 유혹의 순간들도 있었다.
  무슨 국인가를 끓이고 있었다. 뭐가 빠졌는지 맛이 나질 않는다. 들어 갈 것 다 들어갔는데 맛이 없다. 이거 어떻게 하지? 쇠고기 다시다를 넣어? 연신 맛을 보면서 다시다의 유혹에 넘어갈 참이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 때 옆에서 민성이가 국대접에 담겨 있는 쇠고기 다시다에 숟가락을 꽂아 넣고는 나에게 권한다.

  “이거 넣어봐. 자~”

  순간 시선이 민성이의 손을 타고 올라가 얼굴에 꽂혔다. 웃고 있었다. 난 흠칫 놀랐다. 야릇한 미소! 맛없는 국 앞에서 고민하는 나에게 시원하고 유혹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며 민성이는 야릇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정신이 확 들었다. 화학조미료를 멀리하고 조합원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나의 다짐을 무너뜨릴 수 없다. 위험했다. ‘쇠고기 다시다’의 유혹이 민성이의 그 미소 한방에 싹 달아났다. 그 때 민성이는 아마도 선의를 가지고 건냈겠지만 나에겐 야릇한 유혹의 미소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도 맛없어서 화학조미료의 유혹이 고개를 내밀곤 했지만 민성이의 미소를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앞으로 내가 주방장으로 있는 한 절대 화학조미료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짬버리기 투쟁

  밥 먹는 사람이면서 첫 번째 고민은 돈 문제였다. 처음엔 매일 5만원씩 적자라고 했다. 그 다음은 문제는 먹고 남은 음식쓰레기 처리문제였다. 그 전에 음식쓰레기를 가져가던 개장수 아저씨가 공주로 내려가면서 처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옆에 있는 수색차량식당의 나래-이 업체가 우리 식당 외주 업체인건 설명 안 해도 아시리라-는 어디서 처리를 하는지 짬을 비우고 있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병권형이랑 봉기형이 말씨름을 하곤 했다. 병권이 형은 옆 짬통에 버리자고 주장하고 봉기형은 다른 곳을 알아보자고 했다. 다시 말하면 병권이 형은 나래를 짬으로 엿먹이자는 주장이고 봉기형은 치사하게 쓰레기가지고 그러지 말자는 주장이다. 행동파 병권이형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저녁 설거지랑 청소 마무리를 하고 짬을 한 바구니를 들고 가서 나래 짬통에다 버렸다고 짬 문제 해결했다고 큰소리를 쳤다. 같이 갔던 철이 형이 박장대소를 하며 상황설명을 해줬다. 짬을 들고 가 버리려고 폼을 잡는데 수색차량 조합원이 그 모양을 빤히 보고 있었는지 지나가고 있었는지 암튼 대놓고 버리면 들키는 상황이었단다. 철이 형이 들키면 좀 그러니깐 지나가면 버리자고 하자 병권이 형이

  “아니야! 이런 건 대놓고 해야 돼! 야~ 내가 너네 짬통에 짬버린다~!”

  이러면서 진짜 대놓고 옆 짬통에다 짬을 버리고 와서는 짬문제 해결했다고 큰소리 친 것이다. 식당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수색차량 조합원은 그냥 휭 하니 지나갔을 뿐이고. 소리 지른 사람은 멋쩍을 뿐이고.
  결국 이 문제는 최근에야 해결을 볼 수 있었다.
  며칠 전, 정문 앞 천막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분홍색 가운을 입은 수색차량 영양사가 씩씩 거리며 우리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 사무소 들어 올 일은 짬 문제밖에 없다. 직감한 나는 얼른 뒤쫓아 갔다. 벼락은 설거지 하던 봉기형이 맞았다. 영양사가 어제 짬을 가져갔는데 오늘 보니 다시 한가득 짬이 있더란다. 우리가 버리는 거냐며 따지고 있었다. 봉기형은 난 잘 모르겠다고 시치미 떼면서 나한테

  “네가 어제 짬버렸냐?”
  “아니! 난 모르는데.”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다가 봉기형이 넌지시 영양사한테 짬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힘 빠진 영양사는 친절하게 전화번호가 있다며 봉기형을 데려가 구청 소개로 알게 됐다는 업체 번호를 적어주었고, 이 업체에 전화하면서 결국 짬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봉기형이 우리가 버렸던 짬통이랑 비어 있는 짬통을 바꿔놓는 친절까지 베풀고 와서는 창피해 죽겠다며 투덜거린다. 병권형의 대놓고 짬버리기 투쟁은 결국 영양사의 항의와 봉기형의 오리발 내밀기, 업체와의 연결로 봉기형의 주장대로 마무리 되었다.


식당은 우리꺼다


  식당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우리는 식당의 주인이 아니었다. 지금은 물론 우리가 밥하고 설거지하고 시장가서 장도 보고 짬도 버리고 있다. 우리가 주인이다. 지부 임원뿐만 아니라 같이 설거지 하고 밥하는 조합원도 있다. 지내다 보니 일 잘하고 음식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못하는 사람들은 차분히 물어봐가며 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다. 정동기!
  처음 시도해보는 닭도리탕을 해보려고 인터넷에서 맘에 드는 레시피를 프린트해서 주방에 걸어 놓았다. 닭은 씻어서 맛술과 후추 소금을 살짝 뿌려서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데 동기형이 왔다.
 
  “형 닭좀 썰어 줘요.”
  “알았어. 내가 조사불지!”
 
  동기형이 일을 시작했다. 닭을 자근 자근 쪼개 놓았다.
 
  “야~ 이거 닭 내가 조사놨다고 하지 마라. 너무 잘게 조진 것 같다. 그 담엔 머하냐?”
  “감자 깎아줘요.”
 
  난 부산하게 양념장 만들고 쪼개 놓은 닭에다 양념을 버무리고 있었다. 옆에서 동기형이 이거 썰면 되느냐고 묻더니 싹둑 싹둑 칼소리가 난다. 잠시 후 당근을 다듬고 썰려고 동기형 옆에 가보니 자잘하게 썰려진 감자가 눈에 띄었다. “형 감자까지 이렇게 조사불면 어떻게 하는겨! 일단 물어나 보고 하던가!” “왜 이렇게 하믄 되지! 먹으면 다 똑같은데.” 옥신 각신 하다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서 같이 감자를 썰고 있는데 철이 형이 왔다. 동기형이 감자를 조사놔서 나한테 혼났다고 하니 어디 보자면서 감자를 뒤적거리다 동기형이 썰어 놓은 감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어~ 이거 머냐! 근데 동기야! 너 닭도리탕 안 먹어 봤냐?”

  요리가 끝난 후 동기형이 썰어 놓은 감자는 한 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국물에 다 녹아 버려 형체가 없어진 것이리라! 그나마 계란국은 동기형이 맛있게 끓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언젠가 부추전을 할테니 부추를 씻어 달라고 했다. 있는 부추를 전부 씻어 달라고 했다. 전부 잘 씻었다. 동기형이 이걸로 ‘전’ 부칠거냐고 물어 봤다. 그렇다고 하자 부추가 너무 많다며 반 정도를 갈라놓더니 말없이 부침가루를 집어 든다. 눈 깜짝할 사이 부침가루를 몽땅 부추위에 쏟아 부었다. 조금 저어 보더니. “부추가 적다.” 결국 모든 부추와 부침가루가 들어갔다. 이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얼른 쫓아가 봤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엄청난 양의 부추전을 하게 됐다. 부추를 남겨서 할 것이 있었건만. 쩝! 그래도 그 부추전은 맛있어서 불티나게 팔렸다. 그리고 그 날 동기형 계란국은 역시 맛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지부임원 몇 명이 그나마 이제껏 식당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은 역시 함께 하려던 조합원들 덕분이다. 쉬는 날도 일 하러 나왔다는 조합원이나 틈나면 달려오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안되면 고생한다고 박카스나 비타500 아이스크림 민들레즙, 야쿠르트 등으로 힘내라고 격려해준다. 말로만 이라도 “니~들이 고생이 많다!” 연신 남발해준다. 이게 유행어라는 사실은 티비를 안보는 관계로 조금 후에야 알았다. 남들 흠잡기에 익숙하고 칭찬에 인색한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유행어다.
  한번은 식당에서 일하는 임원들에게 고생이 많다며 권동오 기관사님이 ‘칸’ 야쿠르트를 네 개를 사다가 모금함 옆에 놔두셨다. 설거지에 여념이 없던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옆을 보니 누군가 이 야쿠르트가 한 개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어? 뭐지?” 저기 앉아서 밥 먹고 있는 타소 승무원이 가져가는 걸 철이 형이 봤다고 했다. “뭐? 가져갈 때 얘기했어야지!” 옆에 있던 선욱이와 나는 분개했다.

  “아니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그걸 가져가냐! 2000원 내고 밥먹으면서 1000원짜리 야쿠르트를 배식하는 줄 알고 가져갔나?”

  철이 형이 그냥 조용히 하라며, 가서 얘기하고 야쿠르트를 가지러 간다는 나를 말렸다. 그러는 사이 반찬이 부족하다며 계란 후라이를 만들던 봉기형이 완성한 후라이를 후라이팬에 담아 그 승무원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와 철이형이 신이 나서 봉기형이 계란주면서 얘기를 할까 말까하며 보고 있었다. 당연히 가져 오겠지? 왠걸 친절하게 웃으며 맛있게 드시라는 둥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철이 형은 저 사람들 무안할까봐 그냥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내가 말하면 기분 나쁠 거라면서.  잠시 후 연충희 선배님이 다가와 고생 많다며 음료수를 건네 주셨다. 그러고 보니 타소 승무원은 둘인데 야쿠르트가 하나다.

  “또 하나는 어디 간거야?”

  그 때서야 철이 형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처음에 연충희 선배님이 먼저 야쿠르트를 배식하는 것인 줄 알고 가져가셨단다. 이미 반찬을 담아 자리에 갔던 그 승무원들이 그 모양을 보고 되돌아와 야쿠르트를 가져간 것이다. 철이 형은 연충희 선배가 무안해 할까봐 조용하라고 했던 것이다. 혹시 이 글 보시면 연충희 선배님 더 무안하실라나? 괜찮죠? 그리고, 계란후라이 들고 갔던 봉기형은 그 사람들이 야쿠르트 가져간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나간 줄 알았단다. 하여간 한참을 웃었다.




작지만 큰 투쟁

  식당 외주화 문제로 지부장 삭발과 안전운행을 시작하고 지부임원들은 고소고발에 이어 직위해제를 당했다. 단협에 명시된 조합원들의 복지를 축소시키면서까지 무리하게 식당외주를 진행시키는 공사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에 반발하는 지부의 반발도 거센 것이어서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심지어는 식당은 그냥 외주를 줘도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조금 오바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심지어 사측의 대처가 영리해지면서 안전운행 투쟁의 효과도 미미하기만 하다. 중요한 건 사측과 노조의 기싸움에서 이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 먹거리는 우리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존의식이다. 자기 집에서 남이 해주는 밥 먹는게 호사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자기 집에서 자기가 밥해먹고 싶어도 못 먹고 남이 해주는 밥만 쳐다봐야 하는 현실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상황이 딱 이런 상황이다.

  식당을 지키고 조합원들에게 밥을 거르지 않게 하기 위해 지부임원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식당을 지키고 있다. 5월 중순 너머까지의 일과를 보면 5시 기상해서 식당 문 열고 배식준비를 마치면 6시 30분쯤 된다. 자리를 지키다가 8시쯤 설거지를 시작해서 9시에 마치고 조금 쉰 다음 점심준비 시작하고 배식 준비가 끝나면 11시 반이다. 자리 지키다가 설거지가 많이 쌓인다 싶으면 한번 설거지 하고 두 번째 설거지를 마치면 세시, 네시부터 저녁준비를 한다. 7시부터 설거지 시작해서 마치면 8시 반이다. 임원들이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수월해져서 6시에 아침 시작해서 8시에 설거지하고 9시면 끝난다. 10시에 점심시작해서 마치면 11시 40분에 끝나고 1시에 설거지 시작해서 2시 30분 쯤에 마무리. 4시부터 저녁준비해서 마치면 5시 20분 6시부터 설거지 시작해서 7시 30분쯤 마무리 한다. 바쁠 땐 중간에 담배도 못 피운다. 그러고 보니, 5월 31일 딱 하루 빼놓고 매일 배식을 했다. 또 동기형이 문제였다. 집회로 인해 저녁배식 때 자리를 비웠는데 그 날 저녁 동기형이 식당문을 잠그고 나왔다. 그리고 열쇠를 매일 넣어 두는 장소에 넣지 않고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식당 열쇠를 못 찾아 동기형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기형이 가지고 간 것으로 치부하고 열쇠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던 관계로 그날은 전면 배식이 중단되고 만 것이다. 덕분에 소중한 휴일을 보내기는 했다.
  어쨌든 식당에서 지부가 직접 밥을 해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로는 쌓여가고 조합원들도 슬슬 지부가 식당을 운영한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점점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 안전운행 투쟁도 이 시간만큼 길게 이어지고 있다. 질지 이길지 장담은 할 수 없다. 경찰사장은 자기 입 밖에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부류의 인간일 것이고, 그것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에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고 신중하게 만드는 것이고, 해야 할 말은 “그 입 닥치라!”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행동은 안전운행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이고, 지부임원들은 아침부터 열심히 식당 밥하기 투쟁과 안전운행투쟁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 화물출근이다. 지부조 없어진 게 억장이 터지지만 한편으론 일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식당일에서 해방되는 시간이다. 밤출근하는 날이라도 오면 큰일이긴 하다. 정말 병가라도 내고 쉬고 싶은 심정이다. 내일은 좀 더 일찍 나와서 밥을 해야 한다. 무릎이 건들 건들거리지만 저녁에 술 한잔하고 자야겠다.

Posted by 서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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